모름지기 사내라면 스물을 넘기기 전에 제 짝을 찾기 마련이다. 못 찾으면 억지로라도 갖다 붙여 가정을 꾸리게 하는 것이 부모들의 소망이고. 하지만 도련님은 스무 살을 훌쩍 넘은 스물세 살의 나이가 되도록 어떤 어여쁜 여인이 찾아와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어르신께서 제대로 된 자리를 잡아보려 하면 어느새 방을 비우고 사라진 뒤였다. 그토록 인자한 어르신께서 호...
“얘 진영아, 일어나서 좀 들어봐!” “......” “정말 중요한 소식이래두?” 또 시작이다. 옆에서 울 어머니가 주무시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 늦은 시간에 창호지 너머를 기웃거리며 나를 부르는 향숙이의 목소리를 듣고도 모른 체 했다. 이런 밤중에 함부로 남의 방에 찾아와 민폐를 끼치다니. 앞뒤 안 가릴 정도로 순수하고 날 가장 친한 친구로 여기는 애란...
하루아침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걸까. 그동안 민현이 알던 진영의 모습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얼굴, 어둡고 날이 선 표정. 그 안에는 분노와 경멸이 섞여 있었다. 찰나의 순간임에도 분명히 보였다. 그대로 학교에 간 진영이 돌아올 때까지 민현은 멍하니 그 목소리와 표정을 되새겼다. 모르겠다. 곁에서 잠든 것...
바닐라 어쿠스틱 - 맴돌아 “형님들 안녕하세요!” “어 안녕.” 파릇파릇한 새내기들이 발랄하게 인사한다. 여자셋 남자셋으로 짝 지은 꼴이 마치 몰래 삼대 삼 미팅하다가 딱 걸린 것 같다. 민현과 동기들은 복학생 답게 피씨방에서 나와 맥주를 사러 편의점에 들르는 길이었다. 귀여운 새내기들은 우연히 마주친 선배들과 학번 차이가 꽤 나다보니 처음엔 긴장한 것 같...
걱정이 되어 근처까지 찾아온 다니엘이 골목 어귀에서 서성이고 있는 진영을 발견했다. 곧장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모습에 붙잡아 뭐하고 있었느냐고 물었지만 진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혼이라도 내야하나 싶었지만 자신이 화를 낼 일은 아니라고 판단이 들었고 어쨌든 무사했으니 됐다는 생각에 휴대폰부터 꺼내들었다. 민현에게 연락하기 위해서. 민...
“손님 이러시면...!” “열어.” 갑작스런 소동이 일었다. 가드를 뚫고 무작정 올라갔다. 키를 빼앗아 문을 열어버리는 것을 안간힘을 다해 막아섰지만 그의 힘을 이겨내는 건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룸 안에는 피를 빠느라 정신이 없어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도 못한 다니엘이 있었다.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나가.” 으르렁대듯 뱉은 민현의 목소리에 공기의 흐름마저 ...
“오늘 늦을 거야. 먼저 자고 있어.” “네.” 잠이 덜 깬 건지 부은 눈으로 밥을 겨우 우겨넣으며 대답한다. 진영과 잠자리를 분리한 이후로 처음 룸을 잡은 날이었다. 낮 시간에 자리가 없어 미뤄왔지만 일단 민현도 급한 대로 기력을 채워야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흡혈을 미룰수록 진영을 돌보는데 지장이 생기니까. 진영이 혼자 있을 시간을 생각하면 미안했...
“먼저 자라니까.” “으응...” 이제 막 귀가한 민현이 탁자에 엎드려 잠든 진영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걱정이 담긴 목소리. 한참동안 졸았는지 한쪽 뺨에 빨간 자국이 남아있다. 민현은 진영이 학교에 적응함과 동시에 여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돈을 대가로 흡혈인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직업여성을 샀다. 가장 간편한 방법. 그간 금욕했던 몸은 기다렸다는 듯 피와 ...
“인간 사육?” “그래.” 민현은 탐탁찮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사육이라. 가축에게나 쓰이는 표현을. “꽤 편리하다고. 요즘 같이 식사하기 어려운 시대에 하나쯤 키우는 건.” 논리적으론 상당히 경제적인 방법이다. ‘인간 사육’ 불멸의 존재인 흡혈인은 쉽게 변하는 인간의 세계에 섞여 살아가고 있다. 주식은 피. 그리고 섹스. 불멸은 혈액공급과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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